EXHIBITIONS

피카소가 사랑한 아프리카 그림

전시일정2023-03-30~2023-04-27

INTRODUCTION

압두나카사(K. Adugna_Ethiopia 1978~) 


* 아프리카적이면서도 여느 작가와는 다른

많은 아프리카 작가들이 탈거리, 즉 자동차를 많이 그린다. 압두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승용차는 물론 버스, 자전거, 기차가 자주 등장한다

이는 어디론가 떠나기를 바라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닌 유목민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런데 그에게는 또 다른 탈거리가 등장한다코끼리, , 낙타 심지어 새는 물론 

닭을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고 신화 속 유니콘도 등장한다

동물들의 등 위에는 핸들이 있고, 혼자가 아닌 가족이 타고 있다

압권은 엄마의 긴 머리카락도 탈거리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에서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물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압두나에게 있어서 자동차나 동물 역시 둘이 아닌 하나의 세계이다

유기적 세계관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 기저에는 현실이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압두나에게 인간의 관계는 더욱 더 공고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등장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이다

가족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 현실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이다. 남편에게는 아내가

부부에게는 자식이 있음으로서 현실을 버티는 힘을 얻게 된다

그림 모두에 아내가 등장하고 여기저기 뛰노는 아이들, 그 자체가 에너지가 된다.


* 일상적이면서도 아프리카적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압두나의 작품을 자세히 보면 콜라쥬 기법이다. 그런데 좀 다르다.

물감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색을 위해 빛바랜 종이를 사용하고

그 위에 그랙픽적 문양을 새겨 놓은 것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화면을 메우고 있는 대부분의 문양이 ''이고 '동그라미'이다

창은 안에서 밖을 보거나 밖에서 안을 보는 틈과도 같은 것이다

결국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다주목할 점은 신문이나 잡지를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기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일본 식민지 시절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한글 깨우치기가 있었다

지금의 아프리카는 6~70대 노인들이 글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압두나가 신문이나 잡지를 사용한 것은 글을 모르는 이가 

글을 깨우치는 근대성과도 직결된다글을 읽으면 생각이 바뀌고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종이와 아크릴이라는 물성이 다른 두 재료의 충돌을 유도하여 

그림을 훨씬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조형적 측면도 고려했을 수도 있다

압두나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지식인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엘음파두(J. MpahDooh_Cameroon 1956~) 


* 그림속 이데아 관찰하기

문명의 경계에서 아프리카나 서구사회는 더 이상 구분이 모호하다

시골 어디를 가도 젊은이들은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한다

젊은 작가는 물론 나이 든 작가도 정보에 눈이 밝다.

단 문명 앞에 컬러풀한 색이 꼭 아프리카만의 점유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공간은 다르지만 문명은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미술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볼듯한 파스텔 톤의 색이 음파두에게 보이는 것도 이상하지가 않다

요즘은 오히려 한국 미술이 더 화려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엔틱 조각에서 차용된 인물의 긴 목도 더 이상 아프리카적이지 않다

예전엔 목을 길게 표현한 것은 하늘즉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캔버스에 펼쳐진 인물의 긴 목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기린의 목이 길어 멀리 볼 수 있는 것처럼인간의 긴 목은 내일에의 의지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제 아프리카는 예전처럼 종교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아프리카 사람들의 두터운 입술을 하트 모양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아주 많은 종족으로 이루어진 카메룬, 많이 다를 수 있음에 국가는 분열 속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파두의 그림은 살며시 이데아를 펼친다

하트 모양으로 그린 입술의 존재 의미는 사랑이란다

누군가를 편 가르고 증오하는데 사용하는 입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떨 때는 입술이 반대 방항으로 그려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입술이 상대에게 남아 있는 모습이다

6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게 어느 한편으로 위안이 된다.

 

음파두가 알루미늄이라는 재료를 선택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길거리의 콜라병 뚜껑이나 해변가로 밀려 온 나무를 그냥 폐품으로 치부하지 않고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는 예술적 유전자를 가진 이에게 특별한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프리카 작가들에겐 아주 특별한 주제가 되어 '리사클링 아트'라고 하는 특별한 장르를 잉태시켰다.

음파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인쇄되어진 알루미늄 판에 아크릴로 오일 크레용으로 뭔가를 그려냈다

송곳으로 인물의 테두리를 긁어내어 알루미늄 고유의 색을 드러나게 했다

관객이 움직이면 긁어낸 번쩍이는 부분이 관객을 따라 빛을 발산하며 발걸음을 잡는다

그림이 훨씬 조형성 있게 보이기도 하지만,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싶어 하는 작가의 욕망도 잠깐 반짝인다.


은도에두츠(N. Douts_Senegal 1973~) 


* 두츠의 미학적 여정

두츠의 그림을 보면, 어느 새 동화의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가난한 곳일지라도 누추함이 크게 보이지 않고

넓게 벌린 팔은 어느 누구와도 쉽게 손을 잡을 수 있고, 길가에 즐비한 자동차는 주인이 따로 없는 것처럼 보이고

높이 치솟은 안테나는 신과의 거리마저도 짧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크릴 물감과 함께 어우러진 신문지와 골판지 위에 낙서하듯이 칠한 크레용에서는

어린 시절의 모습도 보이게 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더 명량하게 만든다

그림 곳곳에 써 놓은 “100=1, 1=100 ”이라는 숫자와 흑백으로 이루어진 화폭은 아예 수묵화의 경계를 넘어 

동양의 우주론도 보이는 듯하다. 두츠의 미학적 여정의 깊이와 폭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세계미술계가 두츠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이는 두츠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을 향한 자유로운 여정의 끝이자 처음이기도 하다.

 

* 100=1에서 100-1=0_정체성의 진화

두츠에게 있어서 ‘100’은 완전한 세계일 수도 있고, 많은 것을 소유하고픈 욕구의 모습일 수도 있다

‘1’은 정체성과 관련되는 수이고, ‘0’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100-1=0”에서 ‘100’ 

즉 세상 모두를 다 소유한다 할지라도1’ 즉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0’ 즉 아무런 의미도 없게 된다는 것이 두츠의 지론이다

이전의 주제인 “100=1”에서는 ‘100’‘1’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이 강조되고 있다면

“100-1=0”에서는 정체성의 문제의 관련하여 ‘1’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1’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겠지만욕구와 이상의 경계에 서 있는 두츠에게 ‘1’은 현실과 점점 타협하고 있는 

자신이 본래의 자기를 잃지 않으려는 동심 혹은 순수성과 맞닿아 있다. 변화하는 가운데 변화해서는 안 되는 것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자신의 정체성 즉 ‘1’로 이야기하고 있다.